
그때의 나를 만든
칸으로 지어진 세계, 순정만화
아무튼 시리즈 스물일곱 번째는 순정만화 이야기다.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라는 아무튼 시리즈에 걸맞게, 사랑하는 연인과의 결정적 순간에조차 순정만화 속 대사가 자동 재생되는 저자는 지금까지 이십 년 넘게 차곡차곡 쌓아오고 있는 순정만화에 대한 애정을 이 책에 쏟아냈다.
지방 소도시, 여중-여고라는 공간에서 성장한 저자는 아직 겪어보지 못한 세계, 더 넓고 전혀 다른 세계를 순정만화 속에서 접하고 점점 더 그 세계로 빠져들었다. 마침 「나나」, 「윙크」, 「밍크」 같은 순정만화잡지들이 속속 창간되고 동네 곳곳에 책 대여점이 생긴 시절이었다.
저자는 유시진 작가의 『쿨핫』은 만화 속 대사 한두 마디를 외울 정도가 아니라 이 만화가 자신의 대인관계와 세계관을 결정 지었다고 말한다. 또 박희정의 『호텔 아프리카』, 신일숙의 『에시리쟈르』 같은 작품들을 보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세계를 배웠다고도 말한다.
작품만이 아니라 칸칸이 세계를 지어 이야기를 전한 작가 한 명 한 명이 하나의 세계였고 동경의 대상이었다. “순정만화 작가들은 독립적으로 자기 일을 하는 프로페셔널한 여성으로서, 확고한 취향을 가진 흥미로운 인간으로서 내 안에 존재했다.”
권교정, 김혜린, 박은아, 신일숙, 천계영, 한승원…, 『불의 검』, 『아르미안의 네 딸들』, 『오디션』, 『다정다감』, 『내 남자친구 이야기』…, 긍하와 강이, 하치와 나나, 부옥과 명자, 루다와 동경, 소서노와 카라…. ‘순정만화의 시대’를 통과한 이들이라면 저자가 소환한 작가들, 작품들, 주인공들 이름만으로도 그때 그 마음들을 다시 불러낼 수 있을 것이다.
그 반짝이던 세계가 아직 나에게 남아 존재한다는 것
순정만화 속 세계를 한껏 돌아다니던 저자는 이제 책장 한쪽을 『도쿄 후회망상 아가씨』,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이런 우리지만 결혼, 할 수 있을까?』, 『결혼, 안 해도 좋아』 같은 만화로 채운 30대가 되었다. 그사이 그 많았던 대여점도, 만화잡지도 그리고 몇몇 작가들도 이제는 사라지고 없다.
그러나 이 책은 반짝이던 한 시절을 추억하며 연발하는 감탄사나 그 세계를 빚은 작가들에게 보내는 헌사가 아니다. 저자의 순정만화 사랑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계의 폭도 깊이도 그때와는 많이 달라진 지금까지도, 또 그만큼 변한 세상에서도 순정만화를 가득 채운 그 어떤 마음들이 자신에게 조각조각 남아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여성이 만들고 여성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이 황홀하게 넘쳤던 ‘순정만화의 시대’, 저자는 그런 시간을 관통해왔음이, 그 이야기의 조각들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음이 지금까지도 힘이 되어주고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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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내가 보듬고 끌어안은
그때그때의 나 그리고 나의 사람들
전지 작가는 ‘전지의 작가 시점’이라는 이름으로 안양을 중심으로 한 동네 풍경, 그 풍경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 모습을 잔잔하게, 꾸준하게 그려왔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시장 상인, 시간이 내려앉은 듯한 오랜 골목길이 그의 그림 속에서 이야기를 품었다. 또 엄마의 구술을 글과 그림으로 담은 『있을재 구슬옥』을 비롯한 단편 만화에서는 우리 주변의 인물들이 가진 저마다의 이야기, 작은 역사들을 꾸준하게 포착했다.
『선명한 거리』는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는 전지 작가의 그림에 오랜 시간을 머금은 이야기를 더해 성장의 시간들을 묵직하면서도 세심한 그림으로 한 칸 한 칸 담았다.
천천히 보기를 권하는,
오랜 시간을 머금은 한 칸 한 칸의 이야기들
남들과 달라 보이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했던 청소년 시절, 무엇 하나 삶을 이끌어주는 것이 없던 때에 출구 삼아 시작한 그림의 세계, 고단하면서도 벗어날 수도 없는 다사다난한 가족과의 관계, 삶의 국면마다 저마다 다른 선택을 하면서 긴 평행선과도 같아진 친구들과의 관계, ‘일’과 ‘작업’의 경계를 넘나드는 창작자의 삶….
책에는 모두 아홉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저 아련하기만 했던 그 시간들, 그 관계들을 이야기로 만들고 그림으로 담았다. 그러면서 작가 스스로 오해하고 있던 것들을 불러내 화해하고, 어스름하게 보였던 것들을 더욱 또렷하게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아홉 개의 이야기들은 누구나 겪었을 성장통의 세계, 자신과의 불화와 불안을 숨기지 않고 은근한 온도로 담백하게 담았다. 애면글면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정감 어린 풍경으로 가득한 이 만화에서 자기 삶과 꼭 맞게 포개어지는 진솔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속에서나 동네에서나 소란스러움은 함께 살아감의 기본값이라고 생각한다. 달라서 부딪히고, 달라서 재밌는 거고, 다르기에 궁금하다. 가끔은 그 소란스러움을 외면하거나 미워하면서 걷어내고 싶지만, 조용해진 사람들과 매끈해진 거리를 상상하면 마음 붙일 자신이 없다. 울퉁불퉁 소란스러운 가운데 얻어걸리는 재미라는 게 있으니까.
_9화 ‘구도심 드라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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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고통에 익숙해지지 말라
내 삶에 용기가 되는 인권 가치 교과서
『사람을 옹호하라』는 인권활동가 류은숙이 쓴 ‘인권 가치 교과서’다. 저자는 1992년 인권운동사랑방 창립 멤버로 인권운동을 시작한 이래 공공기관, 지자체, 학교 등 다양한 곳에서 십수 년 넘게 인권을 주제로 교육을 해왔다. 그러면서 삶의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인권의 역동성을 담은 인권 책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인권을 쉽게 말하는 방법이 있다. <세계인권선언> 같은 국제 규범을 보여주고 한국에서 일어난 공인된 인권 침해 사례를 나열하면서 사람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엄하다는 선언으로 마치면 된다. 그 결과 인권은 ‘천부인권’처럼 누구나 당연히 알고는 있는 말이 되었다. 그럴수록 자유, 권리, 평등 같은 말들은 의의나 맥락이 빛이 바래고, 누구나 자기를 편들 때 가져다 쓰는 언어가 되었다.
이에 저자는 다른 인권활동가, 사회학자, 여성학자 등 십여 명과 함께 공부하면서 새롭게 정의하고 다시 발견해야 할 인권의 가치를 추려 이 책에 담았다.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역사적 맥락이 있는지 살핀다. 권리, 자유, 평등, 연대라는 가치 또한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를 위협하는 반인권적 가치들이 지금 왜 준동하고 있는지, 이를 가려서 살피기 위한 인권 감수성 역량이 지금 왜 절실하게 필요한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성차별, 여성혐오, 노동재해가 일상인 사회, 그런 차별과 고통에 익숙해지고 책임을 도리어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사회에서 그 차별과 고통에 익숙해지지 않고 맞서려면 새로운 언어의 힘이 필요하다.
『사람을 옹호하라』는 현실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으면서 인권 감수성의 시야가 탁 트이는 책이다. 잘못 쓰이고 함부로 쓰이는 인권의 언어를 바로잡아 정말 그 가치가 자기 삶에 절실한 이들을 옹호하고자 하는 힘을 담았다.
권리 대 권리, 자유 대 자유…
대결 구도에 익숙해지는 대신 맥락을 이해하는 힘
영화 <카트>의 배경으로도 유명한 2007년 어느 대형 마트 농성장. 해고 위기에 놓인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생존권을 걸고 싸울 때 누군가 외쳤다. ‘쇼핑할 권리도 인권이다.’ 입점 상인들 또한 영업할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시위를 벌이면 퇴근할 권리를 주장한다. 특수학교를 설립해 장애아동의 교육권을 보장하려고 하면 주민들이 재산권을 침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식의 언어, 권리와 권리의 충돌 같은 구도에 익숙해져 있다.
그 결과 매사를 대결로 보거나, 반대로 모든 자유는 소중하다는 식으로 맥없이 희석된다. 혐오표현, 반인권적 행위를 일삼는 이들도 자신의 자유, 권리를 주장한다. 여성 인권을 보장하라고 하면 남성의 인권도 소중하다고 말하고,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고 하면, 백인의 생명도 소중하다고 되받거나 모든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다고 논점을 흩트리는 식이다.
이렇듯 대등하지 않은 것을 두고 우위, 우열을 따지면 그 아래 깔린 구조, 맥락을 볼 수 없다. 자원을 많이 가진 쪽은 대결 구도에서 훨씬 유리하니 불평등을 권리 충돌로 몰아가려고 한다. 권리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패자로 취급되고, 패자인 자신을 탓한다. 이런 구도에 익숙한 사람들은 사회의 패배자들에게 자원을 분배하는 것조차 부당하다고 느낀다. 인권의 언어가 오․남용되는 현실의 악순환이다.
이 책에서 인권이라는 기획의 출발점부터 되새겨보려는 의도도 여기에 있다. 이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 중 하나는 ‘관계’다. 인권은 인간의 취약함을 서로 인정하고 보완하고자 하는 약속이고, 세계대전이라는 참상을 경험하고 더는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자고 맺은 약속이 인권의 기획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유, 평등, 권리, 연대 같은 인권의 가치들은 지나간 시대의 것, 보편적인 인류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개인들이 매순간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이다. 이 책은 그 안에서 보다 세심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보다 차별과 고통의 맥락을 이해하도록 돕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언어, 행동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타인과 함께 살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사소한 불의로부터 거대한 악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옹호하고 인권 감수성 역량을 강화하는 힘
저자는 인권 감수성을 “어떤 상황을 인권과 관련한 문제로 감각하고, 상황을 재해석하고, 지금과는 다른 행위를 상상할 수 있는 역량, 그 상황과 자신을 연결함으로써 책임성을 공유하는 역량”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특정 타인에게 들러붙은 특성이 ‘원래’ 그런 것이라고 여기는 인식을 되짚어보는 힘이다.
이 책에는 따옴표 안에 담긴 말이 많이 등장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언어, 우리가 접하는 언어를 들여다보면 인권 감수성이 무엇이고 이를 강화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령 한국인들이 검은 피부인 사람을 ‘흑형’이라고 부른다. 신체의 탁월함을 추켜세우는 말로 쓰인다. 정작 흑인들은 이 단어가 인종차별적이라고 불쾌해한다. ‘흑형’이라는 말은 흑인이 어떤 식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야 하는지를 미리 규정하는 표현이다. 운동을 싫어하거나 못하는 흑인의 고유함은 담지 못한다. 또 흑인의 육체적 힘이 어떤 식으로 부각되었는지 그 역사를 헤아리지 못한다.
성폭력과 성차별에 저항하는 여성에게 “너 메갈하냐?”고 묻는 말도 마찬가지다. 고유한 한 인간, 여성으로서 드러날 기회를 봉쇄하면서 낙인을 찍는다. 이를 ‘인종화’라고 한다. 피부색만으로 낙인을 찍어 배제하고 차별하는 인종주의처럼 개인을 특질을 가진 집단으로 묶어 차별하는 것을 일컫는다. 낙인찍힌 여성들에게는 언어폭력은 물론이고 직장을 빼앗는 것 같은 구체적인 박탈 행위가 이어지기도 한다. 폭력의 언어가 구체적인 행위로, 구조적인 차별로 이어지기에 폭력의 고리를 살피고 차단하는 힘이 필요하다.
저자는 인권이란 있지 않은 것을 구현한 획기적인 기획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불평등에 맞선 가장 약한, 가장 낮은 사람들이야말로 “인권의 저자”라고 말한다. 여성혐오, 성차별, 불평등이 굳어가고 있는 지금 한국 사회에 인권 감수성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권은 그저 좋은 말, 있으면 좋은 것, 당연한 것, 교과서적인 것이 아니라 역동하는 가치다. 상투적인 세계를 벗어나 전혀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실현하는 힘이다. 저자는 “열등하고 무시해도 좋다고, 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관점에서 세계를 볼 수 있는 역량”이 인권이라고 말한다. 사소한 불의부터 거대한 악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훼손하려 하는 반인권적 가치들이 차고 넘치는 이때, 이 책이 그런 용기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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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았던 위기의 목격자로서, 새로운 시대의 당사자로서, 궤도를 벗어난 다른 삶을 살아가겠다고, 좀 소란스럽게 그 길을 같이 가자고 말하고 싶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미래가 될 테니까』는 프리랜스 작가이자 드라마 작가, 팟캐스트 기획자, 진행자로서 맹렬하게 쓰고 말하는 윤이나가 자신의 사적인 경험에서 출발해 이른바 ‘밀레니얼 노마드’라는 이들의 삶의 궤적과 현재 위치를 포착해 담은 에세이다.
‘노마드’라는 이름 아래, 그걸 가능하게 하고 그걸 포장하는 공유 경제, 구독 경제, 프리랜스 경제라는 이름 아래 삶은 어떻게 불안정해졌는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어떠한지 경쾌하고도 진중하게 그려냈다.
1983년생으로 ‘선배 밀레니얼’에 속하는 저자는 주거부터 일, 결혼과 출산, 미래에 대한 비전까지 자기 세대의 삶이 이전 세대의 삶의 궤도와는 무엇이 비슷하고 다른지 그리고 궤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려는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를 이 책에 담았다.
우리 세대는 겨우 오늘을 산다. 그 오늘이 내일을 위한 시간이 되리라 믿지 않는다. 그런데도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간다. 올라가고, 성장하고, 나아지지 않아도 내일은 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부모와 다를 게 없지만, 그들과 달리 우리는 가장 예민하게 세상을 받아들이던 시절에 언제든 무엇이든 무너질 수 있다는 감각을 배웠다. 52쪽
누군가의 삶에도 그대로 포개질 사적이고 사회적인 에세이
저자는 경기도 하남 자영업자 부부의 딸로 태어나고 자라 서울의 대학을 졸업했다. 각종 글을 쓰는 작가로 10년 넘게 일했고 이제 그 영역을 드라마 작가, 팟캐스트 기획자 등으로 넓혀가고 있다. 그 시간 내내 목격하고 만난 풍경들, 그 안에서 벌어진 사적이고 사회적인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이 책에 그렸다.
책에는 영화 <버블 패밀리>, <소공녀>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저자의 삶 또한 주인공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체로 가난하고 늘 불안정하다. 저자는 서울보다 주거비가 싼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머물다가 밀레니얼 세대에게 익숙해진 떠돌이 생활, 그것을 포장하는 ‘노마드’라는 말에 의문을 가지고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일자리는 어떤가. 프리랜서 이력이 10년이 넘는 저자는 주변의 일자리 환경이 훨씬 더 심각하게 불안정해졌음을 체감한다. 임시적이고 일시적인 일이 일상인 시대에 일을 계속하려면 나의 능력과 성과를 끊임없이 전시하고 팔아야 한다. 소득이 불안정하므로 ‘내 것’을 가지지 못하고 남의 것을 빌려 쓰는 데 익숙한데 이것이 ‘공유’나 ‘구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취향은커녕 생활에 필수적인 것들마저 소유하기 어려워진 세대의 풍경이다.
디지털 노마드, SNS 시대, 비혼과 비출산, 공유 경제 등으로 이어지는 각각의 주제에서 저자는 거시적인 데이터나 추상적인 비평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삶의 결을 드러낸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대를 비판하거나 비관하는 대신 담담하게, 지금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헤아려보자고, 이제 어떤 선택이 가능한지 가늠해보자고 독자들에게 말을 건넨다.
“나의 용기가 너의 태도가 되고, 너의 목소리가 나를 움직이게 할 때, 우리는 직접 미래가 된다.”
밀레니얼은 체념으로부터 출발한 능동성과 포기로부터 시작된 창의력으로 일한다. 어쩔 수 없다면 내가 하는 수밖에 없다. 여기가 끝이라면, 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면, 새로운 길을 찾아내고 다른 방식으로 뚫어야만 한다. 163쪽
밀레니얼 노마드들은 불안정하고 불안하기만 할까. 저자는 조심스럽게 희망을 말한다. 저자는 현재의 풍경을 담담하게 그리면서도 그 안에서 어떤 변화의 조짐을 되짚는다. 일이 없다고, 집이 없다고 체념하고 포기하는 대신 주어진 상황 안에서 돌파구를 찾는 이들이 있다. 저자 자신도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는 한편으로 뜻 맞는 이들과 모임을 열고 팟캐스트를 제작하는 등 스스로 판을 벌이고 사람을 불러 모은다. 또 그러는 과정에서 일과 삶에서 정해진 ‘생애 주기’ 대신 새로운 경로를 택한 사람들을 만난다. 페미니즘 운동을 통해서 자신의 위치와 궤도를 수정하고 있는 여성들을 목격한다.
각자의 삶에서 자기 삶을 걸고 지금껏 없었던 새로운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기에, 각자 고군분투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미래가 되어주려는 사람들이 있기에 저자는 이것이야말로 “우리 세대의 용기”라고 말한다.
우리의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거기 분명히 있으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안개를 헤쳐나가며 미래를 오늘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불투명하므로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미래가 오직 어둡고 차갑고 불행하기만 한 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결정되지 않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일이 우리 세대의 용기다. 그게 더 나빠지는 방향이거나 천천히 소멸해가는 길이라 할지라도 결국 살아남아 우리 미래를 보는 것이 우리 세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믿는다. 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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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이 탄생했다가 폐지되기까지의 시간을 함께 산 이들에게, 중요한 모든 건 60초 후에 공개되는 것에 익숙한 이들에게, 나 혼자 사는, 산골에서 바다에서 삼시 세 끼를 해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들에게 예능만큼 친숙한 TV 방송 장르가 있을까. 연애, 결혼, 육아, 학교, 주거, 요리, 운동, 공부, 꿈, 삶에서 중요한 모든 것이 아이템이 되는 장르가 예능 말고 또 있을까.
트위터에서 ‘한국 방송의 열렬한 시청자’로 잘 알려진 ‘복길’은 아무튼의 주제로 예능을 택했다. 재미와 감동을 주는 예능이라는 주제를 담은 이야기답게 피식, 큭큭, 꺽꺽을 넘나드는 웃음을 책에 담았다.
물 없는 어항에 갇힌 것 같았던 지방 청소년의 삶, 예뻐져야 한다는 강박에 지쳐 칩거를 택한 시간,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인사가 전국 학교에 내걸렸던 대학생 시절, 그리고 아버지는 왜 자꾸 자연인이 되겠다고 하는지….
<아무튼, 예능>은 ’리얼’일 수만은 없는 TV 속 세계와 저자가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세계를 포갠 진솔한 이야기을 담고 있다. 그리고 디톡스가 필요하다 싶을 만큼 ‘TV 중독’을 앓았던 마니아였는데 웃으라고 만든 방송을 보면서 왜 울고 싶고 결국 외면하고 싶어졌는지를 기록한 한국 예능, 예능인에 대한 집요한 코멘터리이기도 하다.
가족, 동료, 일자리를 잃은,
고통을 잊지 못하는 이들을 잊지 않기 위한 구술기록 프로젝트
2017년 5월 1일, 노동절.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해양 플랜트 마틴링게 건조 현장. 작업을 하던 크레인과 크레인이 충돌, 추락했다. 사망자 6명. 부상자 25명. 다친 사람은 이들뿐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이들 중 환영, 환청, 불안에 시달리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 이들이 있었다.
마창거제 지역에서 활동하는 산재추방운동연합(이하 산추련)은 이 노동자들 중 11명이 트라우마를 산재로 인정받는 과정을 도왔다. 그리고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노동자들의 심리적 고통을 함께 나누고 치유를 지원하고자 만들어진 심리?상담활동가 네트워크 ‘심심통통’이 여기 참여했다. 세월호 유가족 등 사회적 고통을 삶에 새긴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해온 인권기록 활동가들도 합류했다. 노동자들은 전국 곳곳에서 일자리를 찾아 거제로 왔듯, 사고 후 다시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기록자들은 거제뿐 아니라 대구, 울산, 인천, 충남 당진 등으로 찾아가 노동자들을 만났다.
자기 때문에 일자리를 옮겼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청년이 있다. 수년을 숙소를 함께 쓴 동료를 잃은 노동자, 형제가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노동자도 있다. 구술을 위해 녹취한 주인공 아홉 명의 음성에는 눈물과 한숨, 머뭇거림과 분노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들이 자신에게는 평생 남을 상처를 다른 이는 겪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끝내 꺼낸 말들이 이 책에 담겼다.
“사고를 당해보니까 내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안 들을 것 같아요. 그래도 말을 해야 할 거 같아요…. 언젠가는 하긴 해야 할 거 같아요. (…) 사람이 살다 보면 사고도 나고 실수도 할 수 있죠. 그래도 좀 덜 나게, 큰 사고 날 것을 작은 사고로 줄일 수 있게 자꾸 뭐라도 누구라도 해야 할 것 같아요. 계속 관심을 갖고 해야 할 것 같아요.” _김종배, 150쪽
그 많은 배는 누가 만들었는가.
물량팀, 돌관 노동자들이 증언한 위험의 최전선, 조선소
“어떤 위험에 노출될 때 그곳을 벗어나려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다. 그런데 조선소 노동자들에게 제일의 안전 수칙은 따로 있다. 바로 ‘뛰면 죽는다’는 말이다. 조선소 온 천지에 위험이 상존하므로 뛰다가 도리어 더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_기획자의 말, 257쪽
매년 노동자 2천여 명이 노동 중에 발생한 재해로 목숨을 잃는다. 그런데 이 책의 기획자인 마창거제 산추련 이은주 상임활동가는 조선산업이 특히 ‘산재 직업병의 백화점’이라고 말한다. 구조물이 거대하고 복잡한 만큼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충돌, 낙하, 붕괴, 협착, 전도, 폭발, 소음, 무리한 동작, 유해광선, 감전, 분진, 산소 결핍 질식, 유기용제…”(258쪽) 위험한 요소를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그리고 촉박한 시간이 있다. 가뜩이나 위험한 공간에서 안전은 공기(工期)에 후순위로 밀린다. 급할 때 필요한 것이 바로 물량팀, 돌관이다. 물량팀은 작업 물량을 단기간에 처리하는 10~30명 단위의 작업팀이다. 돌관(突貫) 또한 ‘장비와 인원을 집중 투입해 휴식 없이 최대한 빨리 끝내는 공사, 또 이를 하는 노동자’를 가리킨다. 공기가 지연되면 지연손해금까지 물어야 하는 상황(261쪽), 그럴수록 단기 고용 노동자, 즉 물량팀, 돌관팀이 투입된다. 사고가 발생한 마틴링게 프로젝트 역시 발주사로 인도하기까지 한 달여가 남은 시점인 노동절에 노동자 1623명이 출근해 일하고 있었다.
이들은 페인트를 바르고 있는데 위에서 그라인딩 작업을 마치고 샌딩 가루를 불어대거나(70쪽), 시너로 클리닝 작업하는 옆에서 용접을 하는(238쪽) 등 위험하고 비효율적인 혼재 작업이 일상화된 곳에서 일을 했다. ‘조선소의 특수한 상황’(37쪽)이라는 이름으로 소속이 어딘지도 정확히 모른 채 작업에 투입되었다. 위험하고 규정에 어긋나도 ‘관행이다’, ‘어쩔 수 없다’, ‘시간에 쫓기니까 언제까지 이 일 못 끝내면 손해가 된다’는 압력 아래서 ‘안 잘리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다(149쪽).
이 책의 주인공 중에는 하청업체에 소속되어 일한 노동자뿐 아니라 자신이 사업자등록을 한 물량팀장으로 일하다 산재를 인정받은 노동자(105쪽)도 있다. 혼재 노동의 위험뿐 아니라 하청 노동이 발생하는 구조, 임금 체계, 하청-재하청으로 이어지는 구조 등 조선소 노동의 여러 국면이 세세하게 담겨, 이런 구조가 어떻게 노동의 위험을 가중시키는지를 구체적으로 증언한다. 그리고 조선산업이 어떤 이들의 노동으로 지탱해왔는지를 다시금 생각케 한다.
자기 고통을 증명해야 하는 사람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기까지
주인공 아홉 명의 구술로 이루어진 책에서 전체를 이해하기 쉽도록 ‘들어가는 글’에서는 사고 당시의 정황과 사고가 일어난 배경을 주인공들의 목격담을 포함해서 비교적 상세하게 제시했다. 권말에는 ‘기획자의 말’로 마틴링게 프로젝트 사고 이후의 법적 조치와 책임을 묻는 과정, 노동?인권?사회단체에서 요구하는 바가 자세하게 정리했다. 또 산재추방운동연합에서 25년간 일해온 이은주 활동가가 조선업의 개괄과 비정규 고용, 하청 고용이 늘어난 배경,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글을 담아 주인공들의 생애와 한국 사회의 면면을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고 나면 이들 주인공 한 명 한 명의 삶, 일, 상처에 집중해도 좋을 것이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방 얻을 돈을 마련하려고, 숙식을 제공한다고 해서, 서울에서 옷 장사가 시들해져서,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서, 다른 일보다 많은 돈을 준대서 조선소로 간 이들. 이들의 궤적 그리고 뿔뿔이 흩어진 이들의 현재가 책에 담겼다. 즉 이 책은 사고의 기록인 동시에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 면면을 담은 생애사라 할 수 있다.
내용 중에는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아프다면서 일은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묻거나(46쪽), 고통을 호소해도 그 고통을 입증하라고 사무적으로 대하는 공무원들(102쪽)이 있다. 의사 소견서에 따라 휴업급여 등의 지급 여부가 결정되는데도 의사가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는 ‘취업 가능’이라고 써서 급여가 끊기는 바람에 생계가 곤란해졌다는 고백(163쪽)도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근로자를 위해서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근로복지공단은 자기들이 해야 되는 일을 방어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안 된다고 못을 박고, 안 된다는 가정 하에 설명을 해요. 근로자를 위해 있는 기관인데 보험회사처럼 자기 방어하기 바빠요.” _김명진(가명), 220쪽
“‘자꾸 이래 와갖고 약만 먹으면 우얄라 카노?’ 이래 말해요. 그거를 자기가 봐서 괜찮다 안 괜찮다, 좋아졌다 안 좋아졌다 해야 하는데 어떠냐고 물어보고 ‘몸은 괜찮으니까 괜찮다, 이제 그만해도 안 되나, 언제까지 올라 그러노’, 갈 때마다 그런 식이었어요. 내가 안 와도 되는데 나랏돈 받으려고 억지로 오는 사람 취급당하는 느낌이었죠.” _김종배, 136쪽
가장으로서, 중년 여성으로서 기술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일해온 조선소에서 다시는 일하지 못 하겠구나 자각하고 찾아온 막막함, 전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막연함, 정신적 고통과 실직의 불안으로 불거진 가족과의 불화.
이 책의 목적은 사고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 것만큼이나 이러한 ‘타인의 고통’을 드러내는 데 있다. 우리 중 누군가는 이러한 노동의 주인공일 것이고, 또 우리 중 누군가는 이런 이들을 어떤 관계에서건 만나는 자리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고통에 감응하는 것이 변화를 시작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단 직원이 그런 얘기도 했어요. ‘니네 사고 나고 바로 나간 것도 아니고 그 뒤로 보름인가 일을 했던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 있는 사람이 사고 후에 곧바로 어떻게 일을 할 수 있냐.’ 그 말 들었을 때 어이가 없어서 속으로 웃었어요. 저희 손으로 작업한 바닥에서 여섯 분이나 돌아가셨는데 그 배에 다시 올라가고 싶겠어요? 근데 그 위에 간 사람들이 다 가장이란 말이에요. 어떤 마음으로 거길 올라갔겠냐고요.” _김재영(가명), 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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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이 세상에 내가 키울 수 있는 것과 키울 수 없는 것이 극명하게 나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라날 가능성도 없이 공들여 키워왔던 것들 중에는 뜨겁고 건조한 땅이 고향인 식물도 있었고, 사람의 마음도 있었다.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내 커리어의 어떤 부분도 그렇다.
식물을 기르는 마음에 관한 단단하고 애틋한 이야기
“장마라 분갈이를 못하니까 식물 수다용 계정을 팠다.”
트위터 계정 @nap717nap의 첫 트윗이다. 타임라인에는 이게 정말 한 집에 있는 식물이 맞나 싶게 많은, 다양한 식물 사진이 끊이지 않고 올라왔다. 계정주는 밴드 디어클라우드에서 노래를 만들고 연주하는 임이랑.
식물을 기르는 지식이 아니라 식물과 함께 살아가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들려달라고 했고, 그는 과연 식물을 기르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그 기쁨과 의연함을, 식물과 함께하면서 조금은 단단해지고 홀가분해진 삶의 변화를 진하게 담아냈다.
_좋아하면 욕심이 생긴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어서 병원에 가는 게 맞았을 어떤 시기였다. 쌓아도 쌓아도 일은 다시 허물어졌다. 관계도 그랬다. 어딘가로 숨고만 싶던 때였다. 그때 식물을 만났다. 만났다기보단 도망친 것인지도 모른다.
피사체로서 식물의 아름다움을 사랑했을 뿐, 처음부터 새순을 하나하나 매만지는 사람은 아니었다. 죽이고 또 살리면서 식물의 세계로 걸어들어갔다. 차츰 각각의 삶에 알맞은 물과 흙을 알아갔다. 식물은 정직했다. 질서가 있었다. 그 순서 안에 담긴 경이로움이 있었다. 그 생명력과 질서와 경이로움에 매혹되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꼭 필요하다는 기분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화분은 점점 더 숫자가 늘었고, 볕과 바람이 드는 집 안의 모든 자리는 식물에게 내어주었다. 새벽의 쓸쓸함만큼이나 아침의 영롱함을 즐기게 되었다. 식물의 내일을, 다음 주를, 다음 달을 기다리는 기대가 마음속에서 영토를 넓혀갔다. 그렇게 식물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_무언가를 기르는 이들은 알 수 있는 것들
언젠가 볕을 많이 쬔 뒤로 수년째 회복 중인 고무나무부터 겨울을 이겨냈는가 싶었다가 결국 시들고 마는 작은 화분들까지, 식물을 기른다는 것은 죽이고 또 죽이는 생활이기도 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라나지 않는, 죽어버리고 마는 것들이 있듯이 기대 이상으로 자라고 불쑥 솟아나는 것들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관계도, 노래도 그랬다.
여전히 불안을 떨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과거의 나와는 다른 나를 사랑하면서도 아직도 한편으로는 그런 나를 혐오하고 있다. 그 불안과 혐오를 없애고 감추려고 애쓰는 대신 흩어지면 흩어진 대로, 부서지면 부서진 대로 살아가는 데 힘을 쓰는 법을 배우고 있다. 변화한다는 것 자체가 두려웠었다. 그렇지만 생명이 있는 것들의 현재란 언제나 과도기임을 식물에게서 배웠다. 식물 친구들에게 더 좋은 흙과 비료를 마련해주고, 비를 흠뻑 맞히고, 햇살을 조금 더 머금도록 애쓰는 만큼이나 나를 기르는 법을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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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네트워크 시대의 바른 생활, 즐거운 생활, 슬기로운 생활
‘이야, 트위터를 하다 하다 트위터 에세이를 썼습니다’
“이렇게 살아야겠다 작정하고 살지 않아도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그렇게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그냥 그렇게 트위터를 살아온 것이다.” -본문 중에서
언젠가 역사책에서 2010년대 페이지를 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할 단어 SNS. 그중에서도 어쩐지 안쓰러운, 사용자들로부터 ‘트위터야, 아프지 마’ 열렬한 응원을 받는 기묘한 플랫폼. 당대의 가장 뜨거운 이슈를 퍼뜨리는 발파공이자 날선 말들이 오가는 격전장. 세상 귀여운 개와 고양이 들의 놀이터. <아무튼, 트위터>는 그 트위터의 세계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트잉여의 이야기다.
저자는 책을 만드는 편집자다. 편집자건만 뭘 잘하는지 몰랐기에, 잘하는 게 없어서 뭐라도 해야 했기에 출판사에서 시키는 일은 다 했다. 트위터를 만들어 책을 홍보하라는 회사의 지시마저 충실히 따랐고 그렇게 회사에서도 당당하게 트위터를 하던 끝에, 인생의 반쯤은 트위터에 걸치고 사는 트잉여가 되고 말았다…. 이제 작은 방에서 홀로 일하는 프리랜서, 세상과 이어진 것 같은 안도감을 느끼기 위해 모니터에는 항상 트위터 창이 띄워져 있다.
저자는 트위터에서 ‘호밀밭의 사기꾼’이라는 이름으로, 팟캐스트 ‘뫼비우스의 띠지’에서 ‘오라질년’이라는 이름으로 찰진 드립을 뽐냈다. 그런 그답게 이 책은 마음통에 담아두고 싶은 반짝이는 문장들과 폭풍 알티하고 싶은 에피소드들로 채워졌다.
‘빌어먹을 세상 따위, 뚜벅뚜벅 걸어가’
비관 속에서도 삶을 애호하고 가꾸는 태도들이 좋아서
아무튼 시리즈는 트위터에서 출발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을 비관하되 지지는 않겠다는 마음들. 세상이 눈감은 무례와 몰염치에 나서서 경보를 울리는 사람들. 우울하다, 바쁘다, 피곤하다 아우성치면서도 더 나은 것, 바른 것으로 삶을 채우려는 사람들. 바닥없는 우울로 떨어지면서도 요리를 마련하고, 식물을 가꾸고, 바이크를 타고, 개짤을 올리며 이 시간을 살아내는 사람들. 해일이 올 때 조개를 줍는 마음들의 세계, 그 애호의 태도가 바로 ‘생각만 해도 설레는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라는 아무튼 시리즈의 단초가 되었다.
<아무튼, 트위터>에는 그런 삶들의 굳건함을 닮아가려는 저자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렇게 살아본 자만이 던질 수 있는 현명한 문장들을 보며 삶을 돌아본다. 차마 내뱉지 못했던 말들을 타인의 용기에 기대어 함께 외쳐본다. 굳이 혼자 먹을 밥을 애써 장만하는 일의 수고로움, 혼자 일하는 공간에 꽃을 들이고 가꾸는 단정함, 일과 일의 좁은 틈에 자기만의 시간을 빠뜨리지 않는 단단함까지. 그렇기에 저자는 많은 것을 트위터에서 ‘배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기에 더더욱 트잉여가 되어가고 있다….
도망치고 싶지만 혼자는 두려울 때
적당히 애매한 관계가 좋아서
지방 소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저자는 온 동네 사람들이 ‘성당 앞 골목 가운뎃집 막내’임을 아는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고 말한다. 모든 일에 열과 성을 다해 답하고 챙겨주는 가족들의 정성도 때로는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런 관계로부터 도망치고 싶고 숨고 싶을 때 트위터는 딱이었다.
트위터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 관계의 연결망이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역시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트위터엔 조금 다른 사람들, 다른 관계들이 있다고 말한다. 어떤 말에 반응하고 어떤 말을 모른 척해야 할지 아는 곳. ‘친구’도 되고 ‘이모’도 되지만 적정선 이상의 친밀함은 요구하지 않는 곳. 광인도 ‘개저씨’도 ‘넌씨눈’도 있지만 간단히 차단할 수 있고 익명성에 숨을 수 있기에 현실보다 안전함을 느끼는 곳. 한쪽으로 기울어가는 공론장이 일침 한 마디로 균형을 찾아가기도 하는 곳.
랜선으로 이어진 관계를 피상적이라고 냉소하는 이들도 있지만, 저자는 다정한 마음을 나눌 수만 있다면 피상적이면 어떻고 가벼우면 어떠냐고 되묻는다. 그리고 그렇기에 더더욱 트잉여가 되어가고 있다….
‘트위터는 ○○다’, 이 공란에 누군가는 ‘인생의 낭비’라는 말을 채웠다. 저자에게 트위터란 2010년대를 함께 보낸 좋은 친구이자 ‘즐거운 생활’ ‘바른 생활’의 좋은 참고문헌이었다. 그 마음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마음통에도 담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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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
아무튼, ○○
‘생각만 해도 좋은, 설레는, 피난처가 되는, 당신에게는 그런 한 가지가 있나요?’
아무튼 시리즈는 이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시인, 활동가, 목수, 약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개성 넘치는 글을 써온 이들이 자신이 구축해온 세계를 책에 담아냈다. 길지 않은 분량에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져 부담 없이 그 세계를 동행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이 시리즈는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출판사가 하나의 시리즈를 만드는 최초의 실험이자 유쾌한 협업이다. 색깔 있는 출판사, 개성 있는 저자, 매력적인 주제가 어우러져 에세이의 지평을 넓히고 독자에게 쉼과도 같은 책 읽기를 선사할 것이다.
열 번째 이야기, 스릴러
매혹의 독서가 이다혜가 전도하는 스릴러의 세계
몹시 많은 소설, 영화, 드라마가 ‘스릴러’라는 이름표를 달고 세상에 나온다. 그만큼 스릴러는 이 세계를 매혹하고 있다. 저자는 스릴러가 범죄소설이 가진 엔터테인먼트적인 재미를 극대화해 때로 공포를, 때로 쾌감을, 때로 후련함을 안기는 장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저자 자신이 오래토록 코가 꿰어 있는 스릴러의 매력을 이 책에 듬뿍 담아냈다.
어린이용 셜록 홈즈와 애거사 크리스티 전집부터 가해자 가족들이 쓴 처절한 논픽션까지, 관악산 자락 방공호에 가득했던 음습한 기억들부터 강남역 살인사건 등으로 이어지는 현실의 이야기까지, 저자는 소설과 영화, 픽션과 논픽션, 과거와 현재, 실제와 허구를 넘나들며 스릴러라는 매력의 세계로 독자를 전도한다.
풍토병을 닮은 이 장르, 제대로 즐기려면
두 여성이 실종돼 며칠 후 사망한 채로 발견된, ‘홍대 여성 부녀자 연쇄 납치살인 사건’이 몇 년 전 발생했다. 이 사건은 어느 네티즌이 포털사이트에 사건의 정황과 범인을 추정하는 댓글을 달았고 범인 검거 후 그의 추리가 완벽에 가깝게 들어맞았다는 이유로 더욱 ‘유명’해졌다. 사람들은 ‘명탐정’의 등장에 열광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현실 세계의 잔혹한 범죄를 두고 추리게임을 벌이는 일이 과연 맞을까, 특히나 잔혹 범죄, 여성혐오 범죄가 늘어난 시대에 범죄물을 읽고 소비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에게, 독자에게 묻는다.
질문은 그치지 않는다. 여성 작가가 쓴 여성이 주인공인 스릴러가 대거 등장하고 독자들이 여기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야미스라는 장르가 탄생하고 또 이 불편한 세계를 즐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반전이 매력인 장르라지만 반전만으로 평가하는 독법은 과연 무엇인가….
저자는 스릴러는 풍토병과 닮았다고,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서, 우리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 장르라고 말한다. 그래서 스릴러를 말하며 현실을 떼어놓는다면 이 장르의 반쪽만 말하는 것일 수밖에 없으리라. 스릴러라는 매혹의 세계로 파고들면서도 이 책이 독서기에 머물지 않고 이 세계에 관한 많은 말을 담은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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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
아무튼, ○○
‘생각만 해도 좋은, 설레는, 피난처가 되는, 당신에게는 그런 한 가지가 있나요?’
아무튼 시리즈는 이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시인, 활동가, 목수, 약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개성 넘치는 글을 써온 이들이 자신이 구축해온 세계를 책에 담아냈다. 길지 않은 분량에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져 부담 없이 그 세계를 동행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이 시리즈는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출판사가 하나의 시리즈를 만드는 최초의 실험이자 유쾌한 협업이다. 색깔 있는 출판사, 개성 있는 저자, 매력적인 주제가 어우러져 에세이의 지평을 넓히고 독자에게 쉼과도 같은 책 읽기를 선사할 것이다.
아홉 번째 이야기, 택시
TAXI LOVER CHECKLIST
□ 택시가 있기 때문에 차를 사지 않는다고 주위에 말하고 다닌다.
□ 차를 사지 않았기 때문에 택시를 맘껏 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 단지 택시를 타기 위해 외출한 적이 있다.
□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택시를 탄 적이 있다.
□ 빈 택시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 택시를 탈 핑계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약속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집을 나선다.
□ 택시가 나오는 노래를 열 곡 이상 알고 있다(자이언티 <양화대교> 말고).
□ 택시가 나오는 영화를 열 편 이상 알고 있다(송강호 <택시운전사> 말고).
□ 택시가 나오는 책을 열 권 이상 알고 있다(홍세화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 말고).
□ 지방에 내려가면 꼭 택시를 탄다.
□ 외국에 나가면 꼭 택시를 탄다.
□ 하루에 택시를 다섯 번 이상 탄 적이 있다.
□ 택시비로 한 번에 20만 원 넘게 낸 적이 있다.
□ 택시에 타고 있어도 택시를 타고 싶을 때가 있다.
□ 가끔은 택시에서 내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인생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하니까…
그런데 택시라면?
서평가로서 ‘활자 유랑자’라고도 불리는 금정연의 택시 유랑 에세이다. 보통의 작가들이 물건 값을 원고료 단위로 매길 때(‘아, 이 바지가 원고지 12매라니!’) 금정연은 원고료를 택시비로 환산한다(‘원고지 1매를 쓰면 택시를 대충 18분에서 23분 정도 탈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쓰는 모든 원고의 10퍼센트는 택시를 위한 것이고, 가끔은 순전히 택시를 타기 위해 원고를 쓰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는 택시를 좋아한다.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라는 주제의 ‘아무튼 시리즈’로 그는 그래서 택시를 주제로 택했다.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가고 있기를 희망하면서 우리는,
매 순간 원하지도 않았던 지점들을 지난다
정부를 욕하는 건지 강남구 신사동이 아니라 은평구 신사동이 목적지인 나를 욕하는 건지 모를 혼잣말을 읊는 택시기사, 최고령 택시기사가 꿈이라며 손을 덜덜 떨며 운전하는 택시기사, 예상에 없던 경로로 달려 뜻밖에 추억을 소환케 만드는 택시기사……
매번 우연일 수밖에 없는 택시에서 그가 겪은 구슬픈 농담과도 같은 일들은 적당히 불안하고, 적당히 슬프고, 적당히 화가 나 있고, 그런 상태에 적당히 체념하면서도 그 안에서 기쁨을 발견하려 애쓰는 우리의 삶과 적당히 포개진다. 수많은 사람이 거쳐 가는 밀실 같은 장소가 택시이기에 그의 고유한 경험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문학 속으로, 책 속으로 파고들어가 특유의 스타일로 그 세계를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면, 이번 책에서 저자는 저자 자신에게도 여전히 낯선 이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일을 맥없이 웃게 만드는 유머와 적당한 온도의 리얼리티로 담아냈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로 가려 한다. 물론 우리는 그곳이 아닌 지금 이곳에 있다. 여기와 저기. 그러나 저기까지 가는 길을 정하는 건 내가 아니다. 돌아갈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아닌 곳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다. 심지어 전혀 다른 곳에 도착하기도 한다. 매 순간 우리는 원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지점들을 지난다.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가고 있기를 희망하면서…… 그것이 기본적으로 내가 인생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내 생각에, 택시도 비슷하다. 그러니 요금 얼마 더 내는 게 뭐 그리 대수겠는가? 심지어 목적지에 늘 데려다주는데. 85쪽